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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의술의 만남_좁아지는 시야가 보내는 늦기 전 알아야 할 신호
좁아지는 시야가 보내는 늦기 전 알아야 할 신호_안드레아 보첼리와 녹내장 Glaucoma 2026년 6월 FIFA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와 이재가 함께 부른 공식 주제가 [DNA]는 "또 넘어져도 난, 또 다시 일어나"라는 메세지로 깊은 울림을 전했다. 보첼리는 선천녹내장으로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고, 여러 차례 수술에도 12세 무렵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선천 녹내장은 드문 질환이지만 녹내장 전체로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비교적 흔하다. 그렇다면 녹내장은 어떤 질환이며, 소중한 시력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까? 녹내장이란 무엇인가? 녹내장은 눈에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이 점진적으로 손상되는 질환이다. 안압 상승을 비롯한 여러 위험요인의 영향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신경유두에 특징적인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이에 상응하는 시야결손이 발생하는 진행성 시신경병증으로 정의된다. 녹내장은 전방각의 형태에 따라 개방각녹내장과 폐쇄각녹내장으로, 원인 질환이나 유발 요인의 유무에 따라 원발녹내장과 이차녹내장으로 구분된다. 가장 흔한 형태인 원발개방각녹내장은 대개 서서히 진행하며, 초기에는 주로 주변 시야부터 손상되기 때문에 환자가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질환이 진행하면 시야가 점차 좁아지고 중심 시야까지 침범하여 심각한 시력저하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폐쇄각녹내장도 만성적으로 진행하여 뚜렷한 증상이 없을 수 있지만 전방각이 갑자기 폐쇄되면 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급성 폐쇄각발작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떨 때 녹내장을 의심해야 할까? 녹내장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수록 시신경 손상의 진행을 늦추고 시기능을 보존할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다. 가장 흔한 개방각녹내장은 초기 자각증상이 거의 없고 중심시력도 비교적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다른 안과 진료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40세 이상이거나 가족 중 녹내장 환자가 있는 경우, 안압이 높거나 고도근시가 있는 경우에는 정기적인 녹내장 검사가 필요하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장기간 사용했거나 과거 안구 외상 또는 포도막염을 겪은 경우에도 녹내장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건강검진에서 안압 상승, 시신경유두 함몰비 증가 또는 망막신경섬유층 이상 소견이 확인되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편 갑작스러운 심한 안구 통증과 충혈, 급격한 시력저하, 불빛 주위의 무지개 번짐, 두통, 오심 또는 구토가 나타난다면 급성 폐쇄각발작을 의심해야 한다. 이는 안압이 짧은 시간 안에 급격히 상승하는 안과적 응급상황이므로, 증상이 발생하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안과나 응급실을 방문해야 한다. 녹내장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녹내장 치료의 목표는 이미 손상된 시신경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압을 낮추어 추가적인 시신경 손상과 시야 악화를 최대한 늦추는 데 있다. 치료에는 안압하강제 점안, 레이저치료, 수술 등이 있으며 녹내장의 종류와 진행 정도, 목표 안압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선택한다. 안약은 증상이 없거나 시력이 좋아지는 느낌이 없더라도 처방된 횟수와 시간에 맞추어 꾸준히 사용해야 하며 불편감이나 부작용이 있더라도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담당의와 상의해야 한다. 치료 중에도 안압 측정뿐 아니라 시신경검사, 빛간섭단층촬영, 시야검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여 질환의 진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안압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녹내장이 진행할 수 있고 환자마다 적절한 목표 안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약 사용과 정기검사 등 기본적인 치료를 충실히 이어가면서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안압 조절과 녹내장 관리에 보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스테로이드 안약·연고·흡입제나 경구약을 장기간 사용하면 안압이 상승할 수 있으므로 다른 진료과에서 치료받을 때에도 녹내장 진단 사실을 알리고 필요에 따라 안압을 확인해야 한다. 시야가 좁아진 환자는 장애물이나 차량을 늦게 발견해 낙상·충돌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주변을 밝고 안전하게 정돈해야 한다. 운동이나 작업 시에는 눈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특히 녹내장 수술을 받은 눈은 더욱 세심하게 보호해야 한다. 녹내장은 심각한 시각장애와 실명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진단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실명에 이르는 질환은 아니다.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와 정기검사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시신경 손상의 진행을 늦추고 남아 있는 시기능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눈 상태를 확인하고 처방된 치료와 생활 속 주의사항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안과 윤주영 교수 녹내장은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 없이 시야를 서서히 좁혀 가는 질환이다. 하지만 녹내장이 곧 실명을 의미하는 시대는 지났다. 조기에 발견해 안압을 관리하고 정기검사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시신경 손상의 진행을 늦추고 시력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다.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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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연구] 재수술을 부르는 척추수술 후유증 '접합부 후만증'
'접합부 후만증', 흉추10번-골반각으로 막는다 연구자. 김현준교수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정형외과 “성인 척추변형 교정술 후 T10-골반각(T10PA)을 기준으로 ‘적정 교정(matched correction)’을 이룬 환자 군은 골반경사 회복 부전과 근위부 접합부 후만증(PJK)을 모두 최소화했으며, 통증·기능·만족도 등 임상 결과에서도 가장 우수했다.” 국제 학술지 『European Spine Journal』 2026년 35권에 게재 논문 ‘T10-pelvic angle as a newly introduced sagittal parameter: a validation study in terms of pelvic tilt restoration, proximal junctional kyphosis, and clinical outcomes in adult spinal deformity surgery’ 중에서 고령화와 함께 늘어난 척추변형 수술, 그리고 남겨진 딜레마 고령의 할머니 하면 앞으로 굽은 ‘꼬부랑 허리’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극심한 변형은 줄었지만 인구 고령화와 함께 척추변형(Adult Spinal Deformity, ASD) 교정 수술을 받는 환자는 꾸준히 늘고있다. 수술의 목표는 굽은 허리를 펴 시상면 균형(sagittal balance)을 되찾아 반듯하게 걷는 자세를 회복시키고 통증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는 오래 풀리지 않은 딜레마가 있었다. 척추와 골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이는데, 척추를 충분히 펴지 않으면 골반이 뒤로 기울어진 채 남아 허리가 다시 굽어 보이고, 반대로 과도하게 펴면 고정 부위 바로 윗마디에 부담이 몰려 근위부 접합부 후만증(proximal junctionalkyphosis, PJK)이 발생해 재수술로 이어진다. ‘너무 적게’와 ‘너무 많이’ 사이 중용의 미가 중요하지만, 얼마나 교정되었는지를 수술장에서 즉시 판단할 기준은 없었다. 기존 지표와 사각지대와 T10-골반각(T10PA)의 등장 지금까지는 골반입사각(pelvic incidence)을 기준으로 요추 전만(lumbar lordosis)의 적정 교정량을 계산하는 ‘PI-LL 공식’이 널리 쓰여왔다. 그러나 이 지표는 실제 고정 범위인 흉추 하부에서 골반까지 이어지는 전체 정렬은 담아내지 못했다.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최근 제안된 개념이 T10-골반각(T10PA)인데, 흉추10번 척추체 중심과 대퇴골두,천추 상단을 잇는 각도를 통해 고정 범위 전체의 정렬을 나타낸다. 수술 중 바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본 연구팀은 이 지표가 실제로 합병증과 임상 결과를 예측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본 연구의 의미: 교정에도 '적정선'이 있다 척추변형 교정술을 받은 213명을 대상으로, T10PA 값을 연령과 골반입사각에 따른 정상치와 비교해 과소교정군, 적정교정군(±3.5° 이내), 과교정군으로 나누고 2년간 추적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골반경사 회복 부전은과소교정군에서 24.4%로 가장 흔했던 반면(적정교정군 13.3%, 과교정군 7.7%), 접합부 후만증은 정반대로 과교정군에서 73.0%로 가장 높았다(과 소교정군 42.3%, 적정교정군 50.0%). 두 합병증이 서로 반대 방향의 교정에서 나타나는 역설적 양상이 확인된 것이다. 임상 결과 역시 적정교정군이 앞섰다. 기능장애지수(ODI)는 38.3점으로 다른 두 군(44.4점, 44.7점)보다 낮았고, 5점 만점의 환자 만족도도 4.24점으로 나머지 두 군의 3점대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적정 범위를 넘어서는 과교정은 골반경사 회복에 추가 이득을 주지 못했다. '더 펼수록 좋다'는 통념과 달리, 일정 수준을 넘어선 교정은 이득 없이 합병증 위험만 키운 것이다. 그 결과, 보존적 치료를 시행한 환자의 45.1%에서 최초 압박률에 비해 최종 추시 시 압박률이 50% 이상 증가했다. 나이, 성별, 골절 부위, 골밀도 정도, 체질량 지수, 수상 전 골다공증약 복용 여부, 추체 내 골절 위치, 골반 경사각은 골절의 압박률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최초 압박률이 30% 미만이었을 경우 최종 추시 시 50% 이상 압박률이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 또한 시기에 따라 골절 1개월째에 압박률이 가장 많이 진행됐고, 압박률이 50% 이상 진행됐을 경우, 임상 증상도 좋지 못했다. 따라서 골다공증성 압박 골절의 최초 압박률이 30% 미만이면 추후 압박이 진행될 가능성이 더 크며, 수상 1개월째까지 세밀한 추시 관찰을 통해 압박 진행을 방지하는 것이 좋다. 실제 증례가 보여주는 것 심한 후만 변형으로 고정술을 받은 75세 여성의 경우, 수술 직후 T10PA는 10°로 교정되었으나 이는 해당 환자 기준으로 과교정에 해당했다. 6주 뒤 고정 부위 윗마디가 꺾이며 접합부 후만증이 발생했고, 재수술이 필요했다. 주목할 점은 진행되는 동안에도 T10PA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T10PA가 고정 범위 내부의 정렬만을 반영하기 때문으로, 접합부 후만증 진행과 관계없이 안정된 지표라는 것을 시사한다. 임상적 의의와 향후 방향 본 연구는 T10PA가 골반경사 회복과 접합부 후만증이라는 상반된 두 합병증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지표임을 입증하고, 구체적인 목표 범위(±3.5°)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팀의 목표는 적정 범위의 교정으로 합병증 위험을 최소화하여, 더 많은 환자가 지팡이 없이도 반듯한 허리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것이 T10PA와 같은 정교한 정 렬 기준을 계속 다듬어가는 이유다.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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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자리를 벗어나 기꺼이 다시 처음으로 - 소아청소년과 이경석 교수
[소아청소년과 이경석교수] 의사를 꿈꿔본 적 없던 문과생이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됐다. 아이들을 진료하면서부터는 거리의 구조물을 보며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연구를 하면서는 더 나은 소아 보건의료정책을 만들 방법을 고민한다. 최근에는 소아심장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해외연수 대신 소아심장 수련을 선택했다. 익숙한 분야에 머무르기보다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몫을 찾는 이경석 교수의 이야기다. 제자리에서 기대되는 제 몫을 다 하는 의사, 그러지 못하더라도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로 기억되고싶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후 달라진 것들 이경석 교수에게 의사는 처음부터 정해진 진로가 아니었다. 문과생이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간 뒤 고시를 준비할 생각으로 먼저 군 복무를 시작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군 생활을 하면서였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의료와 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IMF 직후의 어려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진로를 고민한 끝에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전공을 정할 때는 생명과 직결된 환자를 돌보는 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어느 과를 택할지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주변 동기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소아를 잘 볼 것 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마침 친한 동기도 함께 소아청소년과를 해보자고 권했다. 여러 고민 끝에 그렇게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삶이 시작됐다. 정작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고 첫 2~3개월은 생각이 많았다. 왜 평생 아픈 아이들을 보며 지내는 일을 선택했을까 싶을 만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일단 귀엽지 않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할 만큼 아이들이 좋아졌고, 어느새 진료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공의를 마칠 무렵,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알레르기호흡기 분과를 선택했다. 여기에 자신처럼 알레르기비염과 아토피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더해졌다. 이후 몇 년간 소아응급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그의 관심은 진료실 밖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됐고, 어느새 세상을 바라볼 때도 ‘아이들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진료실에서 실천하는 '최선' 이 교수는 의료자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닿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의료는 거창한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매일 환자를 마주하는 진료실에서 자신이 아는 의학 지식과 병원이 가진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눈앞의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교수가 생각하는 의사의 기본이다. “환자를 볼 때는 내가 아는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자는 생각을 합니다.” 의사 생활 초기에 만난 한 환자는 그에게 ‘최선’의 의미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 사람이다. 신경외과 인턴 시절, 뇌졸중으로 재활치료를 받던 환자의 배뇨를 돕는 일을 맡았다. 환자에게는 자신이 당직이 아닌 날에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고, 밤중에 연락이 오더라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병실로 향했다. 로테이션을 마칠 무렵, 보호자는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밑반찬 한 가방을 건넸다. 평소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자취한다는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챙겨준 것이었다. 대단한 치료 성과를 거둔 순간도, 특별한 의술을 발휘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꺼이 내어준 시간과 수고를 누군가 알아봐 준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이 교수는 가끔 그 환자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지 떠올려 본다. 의료의 빈틈을 찾아가는 연구 이 교수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한 명의 환자를 넘어, 더 많은 아이들이 적절한 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을가져왔다. 보건학 석사(MPH)를 취득하고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소아알레르기와 보건학적 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이유다. 특히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아이들이 받는 의료에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지,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한 소아천식 연구도 이러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환자를 나누어 분석한 결과, 의료급여 환자군에서 천식으로 응급실을 찾거나 입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중환자실 입원 위험도 높게 나타났다.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라도 놓인 환경에 따라 치료 과정과 결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 데이터로 확인한 것이다. 이 연구가 반가웠던 까닭은 논문 한 편을 더 썼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제적 여건에 따른 의료 격차를 줄이려면 어디에 자원을 더 써야 하는지 보여주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이 연구에 남다른 의미를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 결과는 의료 격차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줄이기 위해 의료자원을 어느 곳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연수 대신 다시 수련생으로 연수를 앞두고 이 교수는 해외가 아닌 서울대학교병원을 택했다. 목적도 견학이나 연구가 아니었다. 소아심장을 새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결정의 배경에는 지역 의료현실이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신규 전문의가 크게 줄면서 2차병원에서는 세부 분야 전문의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지원하 고 가와사키병을 비롯한 심장질환을 진료할 소아심장 전문의는 찾기 힘들었다.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4년 동안 채용을 위해 애썼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생각을 바꿨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배우기로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심장분과 교수님들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주셨다. 그래서 해외연수 계획을 접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소아심장 분야를 수련했다. 이미 알레르기호흡기 분과 전문의이자 교수였지만 새로운 분야에서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젊은 의료진과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당직을 서며 심초음파와 심장시술 보조를 익혔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배움이 더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 기간은 소아심장 지식만 익힌 시간이 아니었다. 여러 진료과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모습, 긴박한 상황에서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 쓸 여유를 잃지 않는 교수님과 의료진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신의 생활도 돌아봤다. 수련을 마친 뒤에는 연구실의 책장과 물건 배치부터 다시 손봤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진료와 연구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두 분야를맡게 된 만큼, 두 배로 이제 이 교수는 알레르기호흡기와 소아심장, 두 분야의 환자를 진료한다. 매주 심장클리닉과 심장초음파 진료를 하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도 심초음파를 시행한다. 그 밖의 진료시간에는 알레르기호흡기 환자를 주로 만난다. 공부할 것도 자연히 늘었다. 주말이면 두 분야의 학술대회와 연수강좌를 찾아다닌다.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와 보호자,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현실을 직접 경험한 뒤에는 연구 주제도 넓어졌다. 앞으로는 소아심장 분야에서도 보건학적 연구를 진행해 어떤 곳에 의료자원이 더 필요한지 근거를 찾을 계획이다. 바쁜 생활을 받쳐주는 힘은 가족과 동료다. 늦은 귀가와 당직에도 늘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고, 서로 당직을 나누며 버티는 소아청소년과 동료 교수들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묵상과 운동을 한다. 한동안은 복싱과 수영, 마라톤도 즐겼는데 다시 10km 달리기를 시작해 볼 생각이다. 이 교수는 좋은 의사란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맡은 분야에서 최선의 진료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에 못지않게 아픈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진료 중 생긴 의문을 연구로 이어가고, 그 결과를 더 나은 의료에 보태는 것 역시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선택이 모두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문과생이었던 그는 뒤늦게 의대에 진학했고, 고민 끝에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다. 교수가 된 뒤에는 소아심장을 배우기 위해 다시 수련을 받았다. 상황은 달랐지만 선택의 바탕에는 늘 같은 마음이 있었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다하는 것. 이 교수는 앞으로도 그런 의사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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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 - 고성호 의학연구원장 인터뷰
Q. 지난 5월 의학연구원이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 병원의 연구 역량을 한 단계 높이고, 연구가 실제 환자의 진료와 치료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 연구자의 노력만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 성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기초와 임상 연구자는 물론 여러 진료과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하는 융합연구가 중요해졌습니다. 의학연구원이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력하는 플랫폼이자 좋은 아이디어가 실제 연구 성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구심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에 관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우리 병원이 가진 우수한 임상자료와 연구 자원을 활용한 연구도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Q. 진료와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20년 이상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를 해오면서 진료와 연구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를 발전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왜 이 환자에게는 이 치료가 잘 듣지 않을까?’, ‘조금 더일찍 진단할 방법은 없을까?’, ‘같은 질환인데 왜 환자마다 경과가 다를까?’와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질문이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진료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연구를 통해 답을 찾은 뒤, 그 결과를 다시 진료에 적용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좋은 진료가 좋은 연구로 이어지고 좋은 연구가 다시 더 나은 진료로 돌아오는 문화가 병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의학연구원이 그 연결 고리가 되고자 합니다. Q. 앞으로 의학연구원이 집중해야 할 연구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정밀의료와 같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따라가기보다는 우리 병원이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여러 진료과에 오랫동안 축적된 임상정보와 영상자료, 검사 결과 등은 매우 가치 있는 자원입니다.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한다면 조기진단과 예후 예측, 치료 효과 평가 등 실제 진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임상의와 기초연구자, 영상의학, 병리학, 공학, 통계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의학연구원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실제 연구로 이어지며, 그 성과가 다시 환자와 지역사회로 돌아가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연구 경험이 많은 교수님뿐 아니라 이제 연구를 시작하려는 젊은 교수님들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부담 없이 의학연구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병원 구성원에게는 ‘연구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 환자에게는 ‘더 나은 치료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곳’, 지역사회에는 ‘지역의 건강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아직 첫 걸음을 내디딘 단계인 만큼 하나씩 기반을 만들고 작은 아이디어가 좋은 연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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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엔진, 심장을 말하다' 9월29일 세계 심장의 날 - 불규칙한 심장 박동, 부정맥
글.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 박환철교수 급성 심장사 중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부정맥성 질환이다.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여름에는 탈수 및 전해질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고, 그로 인한 부정맥성 질환도 흔치 않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의 부정맥성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심장의 불규칙한 신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부정맥의 진단부터 치료와 예방까지 살펴보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부정맥, 진단이 관건 부정맥의 가장 흔한 증상은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다. 평상시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발생하는 두근거림 증상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부정맥성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두근거림 증상 이외에도 가슴이 ‘철렁’ 대는 느낌 혹은 ‘덜커덩’ 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다. 어떤이는 놀이공원에서 어트랙션을 탈 때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쁘거나 공포스러운 ‘철렁거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부정맥의 증상은 어느 한가지로 통일될 수 없고,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특별하게 관심을 좀 더 두어야 할 증상은 ‘의식소실’ 혹은 일반인들이 빈혈이라고 생각하는 어지럼증을 동반한 두근거림 증상이다. 이런 경우에는 급사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서처럼 철저하게 부정맥성 질환의 동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정밀검사 등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부정맥은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 언급한 심전도 혹은 홀터 검사법으로는 부정맥을 발견하지 못하고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전기생리학 검사를 통해서 확실하게 숨어 있는 부정맥이 있는 지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켜볼 부정맥, 치료할 부정맥 두근거림 증상만 있다고 해서 모든 부정맥 질환을 다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없고, 장기간 경과해도 심장의 기능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실신이나 급사를 유발시킬 위험성이 거의 없는 부정맥은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부정맥 약제를 처음부터 바로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항부정맥 약제가 ‘양날의 칼’과 같은 면이 있어 하나의 부정맥 치료를 위한 항부정맥 약제의 복용이 다른 기전에 의한 부정맥을 오히려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 없이 약을 먼저 찾기보다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심하거나 악성 부정맥의 위험이 있다면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또한 부정맥의 증상이 있으면서 실신의 병력이 있거나 급사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악성 부정맥(심장마비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는 부정맥)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부정맥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 약물부터 시술까지, 부정맥 치료의 최신 선택지 최근 의학의 발달로 부정맥 치료법은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부정맥은 종류와 증상, 위험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만큼 환자의 상태에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천적이며 유전적인 부정맥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일상 속 작은 습관 변화로 기존에 진단 받은 부정맥 재발 위험을 크게 낮출 수는 있겠다. 여기엔 절주 및 금주, 기름에 튀긴 음식 및 고칼로리 음식들 줄이기 등의 식습관 개선, 다량의 카페인(커피, 홍차, 녹차 등) 섭취 제한, 충분한 수면 및 휴식과 적정 강도의 운동 등이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가장 좋은 예방법은 ‘나의 심장에 관심 갖기’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기적인 건강 검진 시 심전도 검사를 챙기고, 평소와 다른 가슴의 이상 신호가 느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심장, 특히 부정맥 전문의 상담을 찾아 상담을 받고 정밀 검사 및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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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신 따스한 마음을 기억합니다 - 소아청소년과 황제균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
아이가 희귀질환을 안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황제균 교수는 두려움보다 희망을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시작된 믿음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조금씩 커져갔고, 그 곁을 지켜준 의료진에 대한 감사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 기다려주신 황제균 교수님께 -세심한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준이 엄마 이효정님. 우리 아이는 다른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몸 전체에 힘이 없고 저산소혈증 증상을 보여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중환자실 앞에 서게 된 부모의 마음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가 왜 이런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교수님께 아이가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질환을 일찍 발견한 만큼 치료 방향을 잘 잡으면 예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이 당시 저희 가족에게는 다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매일 면회를 갈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아이의 하루를 세심하게 설명해 주셨고, 저희가 없는 시간 동안에도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셨습니다. 아이가 엄마보다 간호사 선생님들을 더 오래 바라보는 것 같아 괜히 질투가 날 정도였지만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교수님처럼 바쁜 진료 중에도 보호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었고, 아이의 치료 과정도 함께 이해하며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먼저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과 의료진을 만나며 자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 곁을 지키고, 웃어 주고, 필요한 치료를 놓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한양대학교구리병원에서 오래도록 많은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이효정 드림 사랑으로 함께 걸어온 하준이와 부모님께 -하준이만의 속도로 펼쳐질 내일을 응원합니다. 소아청소년과 황제균 교수. 처음 만났을 때의 하준이는 생후 하루 된 아주 작은 아기였습니다. 쌍둥이 둘째로 태어났지만 또래 신생아에 비해 힘이 부족했고, 수유를 위한 빠는 힘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한 여러 검사 끝에 하준이는 프라더-윌리 증후군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 접하는 질환명에 부모님께서는 많은 걱정을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궁금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진단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치료와 도움을 통해 하준이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생아중환자실에서의 수유 과정입니다. 오랜 기간 위관수유가 필요했고, 경구수유를 연습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하준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던 아이가 점차 힘을 얻고 체중도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의료진 역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특히 체중이 조금씩증가할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 습니다. 하준이는 저에게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하는 아이'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 치료와 재활의 과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곁을 지켜온 부모님의 사랑이 하준이 성장의 가장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준이와 부모님. 지금까지 잘 걸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의료진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하겠습니다. 하준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가족 모두가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오래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황제균 드림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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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8:00 |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정밀한 진단의 시작 - 병리과 임상병리사 홍민숙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정밀한 진단의 시작 병리과 임상병리사 홍민숙 한양대학교구리병원 병리과 조직병리검사실에서 근무하는 홍민숙 임상병리사는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검사실에 도착해장비와 작업 환경을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작은 차이도 진단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검체 하나하나 세심하게 확인하며 표본 제작에 힘쓰고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홍민숙 임상병리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환자들의 건강한 일상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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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학 프론티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더 깊은 방법, 마음을 읽는 의학의 새로운 좌표 - 정신건강의학과 박선철 교수
같은 진단명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고, 또 서로 다른 이유로 견뎌낸다. 박선철 교수는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임상과 철학, 정신의학의 경계를 오가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작업들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마음을 오래 바라보며 그는 오늘도 조용히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간다. Q.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양대학교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스승님들의 가르침이 제 학문적관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임상강사 시절, 박용천 교수님(현 명예교수)께서 참여했던 「한국형 우울장애 진료지침」 개발 연구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것은 지금도 제게 큰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울장애의 정신치료를 근거중심의학 관점에서 재정의하는 작업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별로 시도되지 않았던 혁신적인 연구였습니다. 고려대학교 의대 이민수 교수님을 비롯한 국내 우울장애 분야의 선도적인 정신의학자들과의 교류는 제 학문적 역량과 태도의 중요한 기반이되었습니다. 한편, 작고하신 양병환 교수님께서 칼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 한글번역의 감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경희대학교 의대 송지영 교수님을 비롯한 8분의 정신의학자, 4분의 독문학자, 2분의 철학자가 4년 동안 매달렸던 방대하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우울장애 진료지침 개발 작업이 제 연구의 폭을 넓혀주었다면, 「정신병리학 총론」 번역 작업은 제 연구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정신질환을 단순한 진단 기준만으로 바라보는 접근의 한계를 꾸준히 이야기해 오셨습니다. 현재 정신의학 진단체계에서 가장 고민하고 계신 지점은 무엇인가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이하 DSM) 중심 진단체계는 정신의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진단 기준을 표준화함으로써 연구와 교육, 치료를 체계화할 수 있었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해외 연수 과정에서 미국 연구자들과 논의하면서 저 역시 그 점을 다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만 동시에 고민되는 부분은 이러한 진단체계가 지나치게 범주적접근에 머무를 경우 환자의 개별적 고통과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 렵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장애는 DSM 기준상 동일한 진단명을 갖더라도 증상 조합이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자는 불면과불안을 중심으로 고통받고 또 다른 환자는 무기력과 자살사고가 핵심 증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진단명 아래 이질적인 상태들이하나의 범주 안에 함께 포함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정신의학이 진단과 증상, 개인의 삶의 맥락을 함께 통합적으로 이해하는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실용적 진단체계의 장점은유지하되, 인간 이해라는 정신의학의 본질을 끝내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는 우울장애의 ‘증상 네트워크 분석’과 개인맞춤형 치료연구를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해당 연구가 기존 우울장애 진단·치료방식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행 우울장애 진단방식은 여러 증상 중 일정 개수 이상 있으면 하나의 질병범주로 간주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증상 네트워크 분석은 우울장애를 여러 증상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네트워크 구조로 이해하려는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에서는 불면이 핵심증상으로 작용하면서 피로, 집중력 저하,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또 다른 환자에서는 죄책감이나 자살사고가 중심이 되어 전체 증상을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각 환자에게서 중심적으로 작동하는 증상을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 기반 접근을 활용해 우울장애의이질성을 보다 정교하게 포착해 실제 임상현장을 더욱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진단 명 중심의 획일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증상 구조와 특성에 기반한 보다 정밀한 정신의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Q. 하버드 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수 기간 동안 연구자들과 활발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셨습니다. 해외 연구 현장에서 가장크게 느끼신 점이나 연구자로서의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하버드의대 협력병원인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도튼 패밀리 양극성장애 치료혁신센터(Dauten Family Center forBipolarTreatment Innovation)에서 연수하면서, 앤드류 니렌버그 교수와마수드 카말리 교수 등 기분장애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연구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미국연구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실용적인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었습니다.저는 오랫동안 정신의학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놓치고 지나치게진단기준 중심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지연구자들과 논의하면서 DSM과 같은 단순화된 체계가 있었기에 정신의학이지금처럼 발전하고 더 많은 환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을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 저 역시 연구를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달라졌습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동시에실제 임상 현장과 사회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 역시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신의학 역시 ‘본질’과 ‘실용’사이의 균형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DSM 중심 진단체계의 한계를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그 체계가 정신의학 발전에 기여한 부분 역시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본질’과 ‘실용’ 사이에서 현재 정신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신의학이 본질과 실용 중 어느 한쪽만 선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질만 강조하면 정신의학은 지나치게 철학적이 되어 실제 임상에서 활용되기 어려워질 수 있고, 반대로 실용만 강조하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DSM은 분명 정신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진단기준을 표준화하고 연구 가능성을 높였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을 향상시켰습니다.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결국 진단 기준이라는 언어만으로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환자의 삶의 가치, 지나온 여정, 관계 속 맥락 등도 분명 중요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전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정신의학 역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정신의학의 실용성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될 것입니다. 진단과 평가, 약물 선택과 치료반응 예측 등 많은 과정이 훨씬 더 정교해질 것입니다. 정신의학은 여전히 ‘병적 상태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학술적 질문이면서 동시에 임상적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신의학 역시 인간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보다, 인간을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인식론적 겸손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국제 정신건강 분야 주요 학술지의 부편집위원으로 선임되시는 등 국제 학술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정신의학 연구의 경쟁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코리아’라는 이름 자체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합니다. 저는 Psychiatry Investigation, Acta Neuropsychiatrica, 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and Addiction 등 SCI-E 등재 국제학술지에서 부편집인으로 위촉되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의학연구자에 대한 신뢰도 향상이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의학연구자들이라면 우수한 연구역량과 윤리태도를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에 제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신의학 연구의 가장 큰 강점은 높은 학문적 역동성과 빠른 변화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정신건강 문제 역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쟁, 고립, 사회적 압박, 자살 등 현상은 단순히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세계가 함께 고민하게 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한국 정신의학이 단순히 해외 연구를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과 실제 임상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시아 정신의학의 특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한 연구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Q. 긴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이어가다 보면 ‘이건 꼭 해내고 싶다’는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 그런 연구는 무엇인가요? 한번은 제가 연구라는 활동을 통해 이뤄낸 논문이라는 결과물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쓴 논문이나 교과서 중 다음 학문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논문과 교과서를 썼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결과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칼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과 에밀 크레펠린의 「정신의학」 번역의 감수 작업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한국정신의학의 기초를 건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야 하듯 꼭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향력이 큰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영역’에서 연구결과물을 내려고 합니다. 제가 정신병리학 고전의 한글번역이나 북한 정신의학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정신병리학 고전 한 편을 번역하고 있어, 언젠가 그 번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인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연구와 진료, 교육, 저술 활동까지 폭넓게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교수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주는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글을 쓰게 하는 동기는 누군가가 언젠가는 읽어주었으면 하는 욕망이라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 번은 제 연구 활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쩌면 내가 그간 끊임없이 의미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허망함에 잠시 빠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연구라는 일이 결국은 대부분 잊혀지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연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연구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을 때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동문 선후배님들께서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해주시고 기뻐해주셨던 것이 제게는 큰 응원과 지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 연구가 더 이상 저만의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제 욕심에서 시작한 연구이지만 그 결과가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의 브랜드파워를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논문이라는 것이 대부분 세간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제 연구 활동의 독창성이 한국정신의학의 기본골격을 구성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작은 벽돌 하나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구라는 것을 놓지 않고 지속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끝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존재이기에, 연구 역시 완결이라기보다 끊임없는 접근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분들과 의료진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한양대학교 구리병원을 찾는 환자분들께는 먼저, 병원을 찾은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온다는 것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더 이상 혼자 견디지 않겠다는 결심에 가깝습니다. 저는 환자를 진단명으로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우울장애, 불안장애라는 이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분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왜 지금 이런 고통 앞에 서 계신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태도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병명보다 크고, 증상보다 깊습니다. 어쩌면 정신의학은 결국 한 인간을 끝까지 단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진에게도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때로 지치고, 반복적이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의료가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 할 품위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피터 쉐퍼의 희곡 「아마데우스」 중 한 대사를 이용해서 인터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하루하루가 ‘위대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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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같은 방향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진료 - 소화기내과 안지현 교수
[소화기내과 안지현교수] 간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이미 오랜 시간을 병과 함께 보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순간은 환자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이해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안지현 교수의 진료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 데에서 출발한다. 치료를 위한 판단을 내리는 동시에, 그 판단이 환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지를 생각하는 것. 그래서 안지현 교수에게 진료는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건너가는 과정이다. 진료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함께 지나가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환자와 함께 걷는 동반자로 남고 싶습니다. 한마디에서 시작된 길 안지현 교수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과학고에 재학하던 시절, 다양한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에 부모님이 건넨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말이었다. 막연하던 선택의 방향은 그 문장을 계기로 조금씩 또렷해졌다. 내과를 선택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중에서도 소화기내과, 특히 간질환 분야는 한 번의 치료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으로 이어지는 경우라면 환자는 긴 시간을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의사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환자의 시간을 함께 지켜보고 이어가는 일이 되는 것이다. 간질환 치료는 정해진 하나의 해답이 있기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치료 방법을 조합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수술, 시술, 약물치료가 서로 다른 시점에서 연결되며 하나의 방향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법을 조합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이 과정은 마치 하나의 예술과도 같습니다.” 안 교수의 말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몸의 상태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선택의 방향도 달라진다. 그래서 치료는 하나의 공식으로 완성되지 않고,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환자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결국 안 교수에게 치료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맞는 답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지치지 않도록 곁에 머무는 일 안 교수가 간질환을 진료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치료의 성과보다 ‘지속의 힘’이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환자와 보호자는 점점 지치기 쉽고, 그 시간은 단순히 의료적인 과정이 아니라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반복되는 검사와 치료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경과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들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다음 선택을 하기까지 망설임이 길어지는 순간도 많다. 때로는 설명보다 침묵이, 판단보다 기다림이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환자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환자분들이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간암이 재발하는 순간은 환자에게 큰 좌절로 다가온다. 그동안의 치료 과정을 지나왔음에도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 무게는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 순간일수록 남아 있는 치료의 가능성을 하나씩 짚어주고,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분히 전한다. 희미해진 방향을 다시 또렷하게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힘든 순간에도 여전히 치료 방법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때로는 그것이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안 교수에게 진료는 병을 다루는 일을 넘어 그 시간을 끝까지 함께 버텨내는 일에 가깝다. 오래 남는 것은 결과가 아닌 순간들 오랜 시간 진료를 이어오다 보면 수많은 환자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다. 반복되는 출혈로 여러 차례 입원을 거듭하던 환자가 힘든 시술 과정을 견딘 뒤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반대로, 반복되는 복수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던 환자의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의료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럼 에도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마주했지만 한쪽에는 회복으로 이어진 안도의 순간이, 다른 한쪽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와 질문이 함께 남는다. 그 두 기억은 의사로서의 보람과 동시 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진료는 단순히 결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떤 치료를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얼마나 함께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판독 영상을 마주하게 될 때 내 앞에 환자가 있다는 마음으로 하게 됐죠.” 더 깊이 바라보는 시선 안 교수에게 프랑스 파리 INSERM에서의 연수는 그동안의 생각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해준 시간이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간종양 유전체 연구기관으로, Jessica Zucman-Rossi 교수와 Jean-Charles Nault 교수를 중심으 로 유럽 각지의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마주한 연구 현장은 속도보다 방향 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내 는 것보다 충분한 토론과 고민을 통해 하나의 가설을 다듬 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한국에서는 빠른 결과를 내는 데 집중했다면, 프랑스에서 는 연구 가설을 충분히 토론하고 결과를 깊이 있게 해석하 는 과정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 연구 결과를 단순히 도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전 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역시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논문에 실을 그림을 함께 수정하며 ‘인상파 작품 같다’는 평가를 들었던 순간은, 연구가 단순한 데이터의 나 열이 아니라 해석과 표현까지 포함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이 경험은 안 교수가 의학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졌고, 결 국 좋은 연구와 진료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낼 때 완성된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더 넓게 바라보는 시선 프랑스 파리에서의 연수는 안 교수에게 연구 이상의 의미 를 남겼다. 그곳에서 마주한 연구 환경은 결과를 빠르게 도 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하나의 데이터를 다양한 관점에 서 바라보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방대한 조직 샘플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여러 연 구자들의 시선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상적이었다. 연구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 라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진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 다. 환자의 임상 정보 역시 단순한 기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다른 시간 과 조건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기 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진료실을 벗어난 시간 또한 그 시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었다. 안 교수에게 가족과 함께한 여행과 일상, 그리고 책과 전시를 통해 접한 다양한 표현과 해석은 기존의 틀을 벗어 나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현대미 술이 보여주는 자유로운 시선은 정답이 아닌 가능성 속에 서 방향을 찾아가는 진료의 과정과도 닮아 있었다. 결국 안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을 정확히 찾아 내는 능력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환자를 이 해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더 넓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일이다.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확장된 안 교수의 시선은 오늘의 판단을 더욱 깊고 단단하 게 만든다. 그리고 안 교수는 오늘도 환자 한 사람에게 가 장 맞는 답을 찾아가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2026-06-01